일상다반사/신변잡기

겐도 바람맞은 이야기

겐도 2006. 5. 5. 05:09
한때는 인기 짱짱하던 겐도군. 드디어 퇴물이 되어가나 보나.

몇년만에 찾은 COEX몰. 상점들도 그새 몇군데 변경된 곳도 있고.. 아무튼 사람 북적이는 대를 정말 싫어하지만 오늘.. 아니 어제는 참을 수 있었다. 무려 일주일 전에 예매해 둔 영화 티켓을 발권받고 약속시간이 다가오길 기다렸다.

베니건스 앞에서 사람들 구경. 거기에는 역시나 다른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휴일 전날, 친구를 만나고 애인을 만나고 혹은 부부가 데이트를 즐기러 나온다. 휴가나온 말년 병장은 역시 군기가 풀어져 있었고 교복입은 학생들은 시끄럽다.

약속시간이 조금 지났으나 연락은 오지 않았다. 약간 먼곳에서 오다보니 좀 늦나 보다 생각이 들었다. 파일을 다운로드 받는 1분도 기다리기 지루하지만 이번 기다림은 그렇지 않았다. 몇년만에 느끼는 즐거움, 기다림, 긴장됨이랄까.

상당히 시간이 흘렀다. 영화시간이 다가오기에 저녁을 먹기에는 빠듯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간식거리를 좀 싸들고 영화보고 이후에 배를 채워야 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기다리기 시작할때 같이 있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사라진 것 같다. 전화를 해 보았다. 음성사서함 목소리가 들렸다. 지하철 안이라 못받는가 보다.

영화상영 10분전. 이제는 먹을 것을 살 여유도 없이 바로 뛰어 들어가야 할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현듯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번에 보려고 하는 영화는 정말 보고싶어했던 작품이다. 어릴때 시리즈물을 보면서 정말 좋아했었고 극장판이 나왔을때 만사 제쳐두고 봤었다. 그사람이 오지 않으면.. 혼자라도 볼까?

9분전. 고민은 말끔히 해결되었다. 그렇다기 보다는 걱정되기 시작하였다. 높은 굽을 좋아하는 그사람이 뛰어오다 다친 것이 아닐까란 생각도 머리속을 지나갔다. 8분, 7분, 6분... 전화는 되지 않고 난 하염없이 지하철역 입구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 옆에서 기다리던 사람이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보니 영화가 끝날 시간이었다. 그사람이 오지 못한 이유는 대충 알게 되었다. 아침에 휴대폰을 잃어버렸나 보다. 나의 전화번호를 따로 메모해 두었을리 만무하고... 혹시나 무작정 이쪽으로 달려와서 나를 찾지 않을가 해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허나 이 사람 많은 곳에서 휴대전화의 도움 없이, 정확히 만날 장소도 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란 거의 희박한 것이다.

허약한 프로그래머의 다리로 4시간 서서 기다린건가? 퉁퉁 부어버린 다리와 발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들어와서 비명을 질러주었다. 제대로 물집 잡혔나 보다. 게임 게시판의 글 조금 읽고, 블로그의 스팸 좀 지워주면서 TV를 봤는데.. DHL 광고가 그 영화를 선전하고 있다. 아그그그...

침대에 누워서 뒹굴거리다가... 잠이 안와서 TV 다시 좀 보다가.. 다시 잘려고 뒹굴거리다가.. 결국 이 글을 쓴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은 집에 햇반이 떨어져서 어제 아침을 못먹었고 낮에 죽 한그릇 먹고는 먹은게 없다. 배에서 밥달라고 난리를 친다. 그래봐야 집에 먹을 거라곤 물밖에 없는 것을.

다시 자려고 시도해 봐야 겠다. 오랫만에 가졌던 즐거움은 괴로움으로 변해 있어 잠을 잘 수가 없지만.. 이제는 피곤하니 곯아 떨어 지겠지. 자고 일어나면 월요일이 되어 다시 바쁜 일상속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설마 사흘 굶는다고 죽진 않겠지. ㄱ-


정말 보고싶은데 말이지.. 앞으로는 절대 못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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